바야흐로 창의성의 시대다. 기업은 창의적 인재를 원하고 교육계도 창의적 인재를 길러내겠다고 한다. 심지어 나라에서도 창조경제라는 이름 하에 창의 혹은 창의성이 미래의 먹거리라고 공식적으로 이야기한다. 자원은 제한되어 가는 반면 정보는 무한대로 확장된 21세기에는 창의성만이 개인과 조직이 갖추어야 할 최고의 덕목이 되어 버린 듯하다.
그런데 과연 창의성이란 무엇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에 대해 똑 부러진 대답을 내리지 못한다는 데 ‘창의성 붐’의 문제가 있다. 창의성에 대한 공통의 정의가 없으니 창의성을 기르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정확한 실체를 알지 못하고 명확한 방향도 없다 보니 창의성에 대해서는 막연한 환상만 커져가고 있는 셈이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창의성의 즐거움』에서 창의성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하면서, 창의적인 인물들의 사례를 통해 창의적인 인간의 특징을 짚어보고 그들처럼 창의적인 인간, 혹은 창의적인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들을 제안한다. 저자는 우선 창의성에 대한 오해부터 짚고 넘어 간다. “창의성은 한 개인의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랜 노력과 여러 조건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상승작용의 결과”라는 것. 말하자면, 창의성은 어느 한 순간 번개를 맞듯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흔히 토마스 에디슨이 전기를 발명했다고 하고 앨버트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은 만들었다고 하지만 이는 말을 쉽게 하자는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창의성을 빚어내는 조건들은 무엇일까?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이를 영역, 현장, 그리고 개인이라고 말한다. 영역에는 지식과 정보, 그리고 역사가 포함된다. 창의성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까지 축적된 방대한 노력과 결과 등을 충분히 이해하고 난 다음에야 그것을 토대로 새로운 것을 고민하는 가운데 가능하다는 것이다. 흔히 창의적 순간의 상징으로 인용되는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도 그가 그 이전부터 물리학에 대해 지식을 쌓고 부력에 대해 고민을 거듭해 왔기에 목욕탕에 몸을 담그는 순간 깨달음을 얻은 것이지, 어느 날 갑자기 백지 위에 그림을 그려지듯 ‘득도’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마찬가지로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를 외치기까지 그와 관계된 모든 이론을 만들어온 사람들이 없었다면 결코 아르키메데스 혼자서 목욕탕을 박차고 나오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또한 그의 이론에 대해 즉각적으로 동의를 구하거나 혹은 반론을 제기한 고대의 물리학자들이 없었다면 아르키메데스의 깨달음은 먼 훗날에야 인정받았을지 모른다. 우리 역사를 돌아봐도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했다고는 하지만 한자라는 문자 체계와 집현전 학자들의 지난한 노력, 그리고 한글 반포 이후 나라에서 기울인 적극적인 정책 등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한자만을 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창의적인 생각을 하려고 무조건 노력하는 것보다는 창의성을 가능케 하는 조건 혹은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이 훨씬 수월하다는 결론에 자연스레 도달한다. 그러자면 우선 알아야 한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변화를 가져오거나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 자체를 알아야 한다. 즉 지식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단순한 예를 들자면, 새로운 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작곡과 악기 연주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바타’라는 3D 영화로 영화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감독으로 불리는 제임스 카메론의 경우만 보더라도 그가 이전까지 2D 영화를 만들며 축적한 지식이 없었다면 ‘아바타’ 같은 작품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창의적인 인물들이 갖는 특징을 한 마디로 이야기한다는 것은 창의성이 한 개인에 의해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단선적일 수 있다. 하지만 시공과 분야를 초월해 창의성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인물들에게서는 몇 가지의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다. 가장 큰 공통의 기반은 호기심과 의지력. 특히 어릴 적부터 무언가에 대해 남다른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창의적 인물들이 가지는 가장 흔한 기억이다. 왕성한 호기심의 결과 엉뚱한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 호기심을 해소하기 위해 일찍부터 극도의 몰입에 익숙했다는 것이다. 토마스 에디슨이 닭처럼 달걀을 품고 있었다거나, 아이폰을 만들어 창의와 혁신의 상징이 된 스티브 잡스가 어릴 적부터 기계에 대한 호기심이 유별났다는 것 등은 잘 알려진 일화다.

과학자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논리적으로 생각한다는 일반적인 인식은 과장된 것이다. 창조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첫째, ‘느낀다’는 것이다. 이해하려는 욕구는 반드시 감각적이고 정서적인 느낌과 한데 어우러져야 하고 지성과 통합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상상력 넘치는 통찰을 낳을 수 있다. 느낌과 직관은 ‘합리적 사고’의 방해물이 아니라 오히려 합리적 사고의 원천이자 기반이다.
특히 부모나 환경에 의해 호기심을 보장받을 수 있었던 어린 시절은 분명히 창의적인 인간이 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반대로 부모나 환경적인 결핍이 호기심을 자극하여 불굴의 의지로 창의성을 발현하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또 다른 특징은 현장에 대한 접근을 들 수 있다. 흔히 창의적인 인물들이 독선적이고 괴팍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전적으로 혼자만의 작업으로 역사를 바꿀 결과를 내놓지는 않았다. 고대 그리스의 토론 문화라든지, 귀족들이 예술가들을 적극 후원했던 르네상스기 피렌체는 물론이지만 각 분야의 전문화가 가속되고 있는 현대에서는 어떤 누구도 자신이 속한 분야를 등지거나 외따로 떨어져 일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창의성만큼이나 소통이 중시되고 있는 것도 그래서이다.
호기심과 몰입으로 유년기를 보내고 결과물뿐 아니라 자신의 인생에서도 무언가를 만들어낸 창의적 인물들은 노년기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창의적이고 긍정적인 경우가 많다. 베르디는 80살에 최고 걸작인 ‘폴스타프’를 작곡했고, 롤링 스톤스의 리드 싱어인 70대의 믹 재거, 예순에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배우 메릴 스트립 등 창의적인 인물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비록 기억은 감퇴하고 기력도 쇠퇴했지만 경험과 이해력이 풍부해지면서 오히려 전보다 더 창의적이 되었다고 말한다. 나이를 먹어도 끊임없이 지식을 쌓고 세상에 관심을 가지며 영역을 넓히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창의성은 인간이 가진 고유한 특성이다. 이제까지 인류가 동물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남아 발전할 수 있었던 것도 창의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창의성이 고갈된다면, 미래의 인류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좁게 보면 이는 조직과 개인에게도 마찬가지다. 창의성이 없는 조직은 건강하게 운영되는 데 한계가 있다. 또한 창의성이 부족한 개인은 삶이 주는 커다란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셈이다. 어려서 호기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장년에 평생을 바칠 일을 찾아내고 노년에 이르러 여전히 젊은 시절과 다르지 않게 살 수 있다면, 창의적인 인간이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창의성이 중요한 것은 바로 그래서이다.